[경기인뉴스=박영신 기자] 안성시는 지난 8일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확진자 관련, 지난 9일 동선을 공개하면서 ‘A식당’, ‘B커피숍’, ‘C의원’과 같이 상호를 익명처리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시가 이처럼 상호를 익명으로만 공개한 이유는 방역당국의 역학조사 결과 ▲확진자가 마스크를 착
용했으며 ▲감염이 우려될 정도의 밀접접촉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방역당국은 그러면서도 17명의 접촉자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시민들은 ”감염 우려가 없다면서 17명의 접촉자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 ”어딘지 알아야 조심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이처럼 시민들을 우롱하는 행정은 참을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시민들의 항의가 게속되자 시는 10일 상호명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확진자 동선 정보를 다시 세재했다.
시 관계자는 ”감염 우려가 없다는 역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역경제 타격과 개인정보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동선을 공개하기 않기로 했었다“며 ”그러나 코로나 감염 확산 방지가 전국적으로 워낙 중차대한 사안이라 동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 시민들의 엄중한 뜻인 것으로 알고 방역과 행정에 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앞으로 다른 지자체처럼 동선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사례는 인천시 부평구에서도 발생했다. 부평구 또한 상호명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시민들의 항의에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안성시에 사는 한 시민은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는 확진자의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를 더욱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투명한 정보 공개가 국민의 안전 보호와 직결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 지침 없고 지자체마다 '제각각'
확진자의 이동경로 공개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해당법 제34조의2 제1항에 주의 이상의 위기경보가 발령되면 감염병 환자의 이동경로,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및 접촉자 현황 등 국민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알아야 하는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확진자 동선 공개 관련 지침에는 공개 항목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 지침(지자체용) 제7-1판'에 따르면 확진자의 동선 공개는 증상 발생일 1일 전부터 격리일까지 하되 감염을 우려할 만큼 확진환자로 인한 접촉자가 발생한 장소(이동수단 포함)를 공개토록 하고 있는 정도다.
이에 따라 시·도 역학조사팀이 확진자의 증상 및 마스크 착용 여부, 체류기간, 노출 상황 및 시기 등을 조사하고 감염을 우려할 만한 접촉자 발생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시·군·구 등 각 지자체가 이를 고려해 공개할 정보의 항목과 구체성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시·군·구별로 각각 공개 항목이나 정보의 구체성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다른 지자체의 확진자 정보 또는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떠도는 각종 정보와 비교해 정보 공개 수위가 낮을 경우, 시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지자체는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과도한 신변 노출로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악성루머 유포 등 인권침해 심각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확진자 정보 공개를 통해 노출된 확진자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확진자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들이 올려지거나 심지어 확진자 관련 사진 등이 돌기도 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확진자가 빈번하게 방문한 장소나 접촉자의 확진 여부를 보고 확진자를 불륜 등으로 몰기도 한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지난 9일 발표한 성명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확진환자 개인별로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확진환자들의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는 인권침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인터넷에서 해당 환자가 비난이나 조롱, 혐오의 대상이 되는 2차적인 피해까지 확산되는 상황"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함께 극복하자” 성숙한 시민의식 있어야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확진자 이동경로 공개지침을 개선한다면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와 관련, 인권위는 ▲확진자 개인별로 방문시간과 장소를 일일이 공개하기보다는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시간별로 방문 장소만을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확진자가 거쳐 간 시설이나 업소에 대한 보건당국의 소독과 방역 현황 등을 같이 공개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경제적 타격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권위는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 감염환자의 사생활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확진환자의 정보 공개에 대한 세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 줄 것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인권위의 성명서 관련, 확진자 동선공개 지침을 개정하는 것을 논의 중”이라며 개선의 여지를 나타냈다.
확진자 동선 공개 지침을 바꾸는 것 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 또한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도가 높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사생활 공개는 인권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아주 높다”며 “이처럼 국민들의 기본권 침해가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주의 깊은 노력이 필요한데 지금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와 같이 국민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세밀한 정보 공개를 대책으로 삼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정부는 개인을 특정하거나 사생활을 구체적으로 노출하지 않고도 감염 위험성과 불안감을 줄이는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확진자와의 접촉으로 자가격리됐다가 해제된 한 경기도민은 우선 “코로나19 확진 판정이 나올까봐 두렵기도 했지만 온 국민에 내 사생활이 알려지는 것이 더욱 두렵고 무서웠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그는 “확진자는 병마와 싸워야 하는 데다 확진자라는 사회적 낙인까지 감수해야 하며 사생활이 온 천하에 공개되고 악성루머에 시달려야 하는 등 삼중고를 겪고 있는 피해자 중의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코로나19는 특정한 국민들을 마녀사냥 하듯이 몰아세우는 것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며 “국민들이 서로를 코로나19라는 험난한 산을 함께 넘어야 하는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할 때”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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