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경제]“태어날 때부터 쟤네들은 정규직이었던 것 같고, 나는 원래 파견직을 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매일 아침, 안산역은 파견 업체 소속 버스들로 북적인다. 파견 노동자들은 이 버스에 실려 주변 공단의 소규모 공장들에 흩뿌려진다. 안산 일대에만 3백 여 개의 인력 파견 업체들이 있다. 인근 반월, 시화공단에 파견 노동자들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파견 노동자들이 없다면 공단이 멈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일터에서 파견 사원들은 존중받지 못한다. 일회용품처럼 손쉽게 쓰이다 버려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지만, 그곳에서 이들은 영원한 이방인 신세다.
“일하다가 막 식은땀이 나는 거예요. 자고 일어나니까 눈이 안보이게 된 거죠.”
한 휴대전화 부품 제조공장에서 일했던 김진성(가명)씨 역시 파견 사원이었다. 그가 일했던 공장에서는 유해 물질인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었고, 김 씨는 일을 한지 보름 만에 시력을 잃었다. 눈이 왜 보이지 않게 됐는지 짐작조차 못했다는 김 씨. 파견 회사도, 일을 했던 공장에서도 김 씨의 건강을 제대로 신경써주지 않았다. 피해자는 확인된 사람만 7명이었고, 대부분 김 씨와 같은 20대였다.
근로자 보호 역할 못하는 ‘파견법’, ‘기간제법’
파견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제조업 파견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불가피한 경우 최장 6개월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업체들은 업체 명을 바꿔가며 이 금지 규정의 빈틈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비정규직을 2년 이상 쓰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법 때문에 2년짜리 계약직들이 급증한 것처럼, 법의 선의(善意)는 현실에서 순식간에 무력화된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현대차 대리점 판매사원들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차를, 같은 값을 받고 파는 일을 해왔던 사람들. 하지만 현대차 직영점의 정직원 판매사원과 대리점 판매사원들의 처우는 너무도 달랐다. 현대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들은 최근 노조를 결성했지만, 대리점 자체가 폐쇄됐고 사원들은 순식간에 직장을 잃었다. 도움을 얻기 위해 금속노조에 가입 신청을 했지만, 이미 금속노조에 들어와 있었던 정규직 판매사원들의 반발로 노조 가입도 어려운 상태다. 대리점 판매사원들은 수개월째 자동차 회사가 아닌 금속노조 건물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일본의 실험은 성공할까
불안정한 일자리의 급증은 일본에서도 큰 골칫거리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은 일본 사회에 파견근로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날로 심화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일본 정부가 최근 내놓은 해법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비슷한 일을 하면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을 주장해 왔던 노동계에서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일본의 실험은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성공적인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수많은 일터에서 이방인으로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리기사와 시간강사, 파견근로자, 용역 및 하청업체 직원들의 고민과 애환, 관련법의 헛점 등을 다룬 [시사기획 창 : 일터의 이방인]은 오는 4일(화)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