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戰 최대 승리 '용문산 대첩'을 기리다
신예지 2018-05-25 11:51:00
[시사인경제]가평군은 25일 설악면 용문산 전적비에서 강현도 부군수를 비롯한 6사단장, 경기북부보훈지청장, 용문산전우회장, 6·25 참전용사, 지역 기관·단체장, 군 장병, 학생 등 3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7주년 용문산대첩 전승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행사는 헌화 및 분향, 난타공연, 기념사, 승리의 노래 제창, 장학금 수여 등으로 진행됐으며, 강 부군수는 기념사를 통해 "참전용사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복리증진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용문산 전투는 1951년 5월, 6·25전쟁 당시 춘계 대공세를 맞아 물밀 듯 밀려오는 중공군 3개 사단과 혈투를 벌여 국군 최대의 승리를 거둔 전투다.
당시 6사단 용사들은 결사라는 글자를 철모에 새기고 사투를 벌여 2만여 명에 달하는 중공군을 격멸시키고 주요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뒀다.
이 전투는 중공군 주력부대를 격멸함으로써 한수 이남으로의 진출을 저지하고 국군에게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전투력을 상승시켜 한국을 포기하려던 UN군에게 공세의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이 전투는 휴전을 거부하던 적이 막대한 손실을 보아 휴전을 제의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6·25전쟁의 명암을 가르는 분수령이 됐고 전선을 현재의 휴전선상으로 북상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용문산 전투는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물샐틈없는 방어로 제압해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 교범에도 사주방어의 신화로 소개되고 있다.
용문산 전투전적비는 순국한 6사단 장병들을 추모하고 전승을 기념함은 물론 호국정신을 함양하고자 1997년 6월에 가평군민과 6사단 장병, 용문산 전우회원 등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높이 19.51m, 폭 19.50m 규모인 이 전적비는 사주방어를 뜻하는 4명의 청성 군인 동상을 비롯하여 무궁화 꽃, 전투 약사, 헌시 등이 음각되어 있다.
전적비 내부는 국내 전적비로는 유일하게 작전 중 산화한 장교 8명, 사병 322명, 종군자 2명 등 332명의 호국영령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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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행사는 헌화 및 분향, 난타공연, 기념사, 승리의 노래 제창, 장학금 수여 등으로 진행됐으며, 강 부군수는 기념사를 통해 "참전용사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복리증진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용문산 전투는 1951년 5월, 6·25전쟁 당시 춘계 대공세를 맞아 물밀 듯 밀려오는 중공군 3개 사단과 혈투를 벌여 국군 최대의 승리를 거둔 전투다.
당시 6사단 용사들은 결사라는 글자를 철모에 새기고 사투를 벌여 2만여 명에 달하는 중공군을 격멸시키고 주요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뒀다.
이 전투는 중공군 주력부대를 격멸함으로써 한수 이남으로의 진출을 저지하고 국군에게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전투력을 상승시켜 한국을 포기하려던 UN군에게 공세의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이 전투는 휴전을 거부하던 적이 막대한 손실을 보아 휴전을 제의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6·25전쟁의 명암을 가르는 분수령이 됐고 전선을 현재의 휴전선상으로 북상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였다.
용문산 전투는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물샐틈없는 방어로 제압해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 교범에도 사주방어의 신화로 소개되고 있다.
용문산 전투전적비는 순국한 6사단 장병들을 추모하고 전승을 기념함은 물론 호국정신을 함양하고자 1997년 6월에 가평군민과 6사단 장병, 용문산 전우회원 등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높이 19.51m, 폭 19.50m 규모인 이 전적비는 사주방어를 뜻하는 4명의 청성 군인 동상을 비롯하여 무궁화 꽃, 전투 약사, 헌시 등이 음각되어 있다.
전적비 내부는 국내 전적비로는 유일하게 작전 중 산화한 장교 8명, 사병 322명, 종군자 2명 등 332명의 호국영령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